Exhibition Plan | Graphic by 50BELL

"Eternal Recurrence (영원회귀)" 휩쓸리고 있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거대한 흐름에 굴종하고 체념하고 말았다. 무기력한 나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그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채 삶을 견뎌내고 있었다. 많은 후회와 걱정이 순간과 지금을 살고 있지 못함을 드러냈다. 산다는 것은 고달프고 허무와 권태로 얼룩진 일상이 끝없이 되풀이될 뿐이라며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렇게 병명도 알지 못한 채, 어쩌면 아픈 것도 모른 채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사진을 매체로 아름다운 순간, 흔히 말하는 결정적 순간을 좇던 시도와 노력은 무의미한 것이었을까. 셔터를 누르자 순간이 조롱하듯 내달렸다. 인식과 동시에 순간은 지나간 현재, 곧 과거가 된다. 영원히 순간도 지금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붙잡아둔 순간은 영원이 되지 못하고 단지 어떤 과거의 한 시점을 지시하는 그럴듯한 좌표에 불과한 건 아닐까. 그리고는 내가 담은 모든 사진이 하찮게 느껴졌다. 사진에서 시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세계 각국의 오후 3시에는 동시성이 결여되어있다. 공간에 대한 전제 없이 시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공간 좌표를 언급하지만, 시간 정보를 지워낸다면 어떨까. 반대로 구체적인듯하지만 불완전한 시간(시, 분, 초)을 표기하고 위치 정보를 가린다면? 시공간 정보가 불명확해지면 사진 매체의 객관성/사실성은 너무도 쉽게 훼손되고 만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라고 여겨질 어떠한 외적 사건이 아닌 대상을 인식할 때의 ‘순간적 동기’와 셔터를 누르는 ‘실존적 결단’에서 섬광처럼 피어난 이미지가 그것이다. 첫 체험은 우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평범한 날 집을 나서며 담은 한 사진 속 선명한 두 글자에는 내 외마디 절규가 오롯이 새겨져 있었다. “아파!” 그것은 찰칵 소리와 함께 내 안에서 울려 퍼진 시퍼런 비명이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삶에서 무언가 잘못되어감을 느끼면서도 애써 무시했던 건 아닐까? 병을 알면 그제야 치료가 시작되는 법이다.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세상을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결단의 순간으로 전환되었다. 이 순간은 과거와 미래라는 두 영원 덩어리가 내 안에서 사정없이 충돌하는 때이고, 새로운 우주가 깨어나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최초이자 최후의 동력이다. 달리 말해서, 이 실존의 순간은 ‘그랬었다’와 ‘그러겠다’를 모두 아우르며 그 어떤 시공간 좌표도 필요로 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영원한 순간이다. 현재에 자기를 위치시키는, 자신을 마주하는 이 관계의 순간에 내 실존은 증명된다. 후회와 걱정, 끈적한 염세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순간을,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연작 ⟪Eternal Recurrence⟫는 시공간을 다룬 지난 두 연작을 계승하고 종합한다. 인식 여부에 따른 시공간의 불확정성과 영원적 순간에 관한 탐구에 덧붙여, 필름 카메라의 데이터백을 이용해 임의의 시간 정보를 필름에 직접 입력하는 것으로 공간을 전제하는 시간이 상대적 개념임을 보일 것이다. 나아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마주하는 결단을 통해서야 창조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며, 이상 세계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생의 치유를 실현할 수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Artist Statement – Eternal Recurrence | Text by 50BELL

아파! – 연작의 시작
(Experiments & Thoughts)
pigment print on paper
272 × 180 mm.
23:16:49.

"아파!" 그것은 찰칵 소리와 함께
내 안에서 울려 퍼진 시퍼런 비명이었다.

3 Years I
pigment print on paper
315 × 420 mm.
10:29:14.

조색과 혼색

3 Years II
pigment print on paper
315 × 420 mm.
10:29:14.

취향으로 칠하고
자연과 시간에 섞이고

Like Cherry Blossoms (Ed. 1/3)
pigment print on paper
1,100 × 1,430 mm.
19:47:30.

그때, 우리 봄날에 사뿐히 흩날리던 벚꽃잎처럼

The Sun Will Sink Into the Ocean (Ed. 1/3)
pigment print on paper
1,430 × 1,100 mm.
23:01:53.

나는 지는 태양, 저 넘치는 자에게서 그것을 배웠다.
태양은 무진장한 풍요로부터 황금을 꺼내 바다에 뿌린다.
더없이 가난한 어부조차도 황금으로 된 노를 저을 만큼!
일찍이 나 그것을 보았고 그 광경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You're Not so Unique (Ed. 1/3)
pigment print on paper
1,430 × 985 mm.
14:15:20.

상대적 시간
모두가 노랗게 익을 그때가 오면
나의 평범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Growing up With the Light (Ed. 1/3)​​​​​​​
pigment print on paper
1,430 × 1,100 mm.
12:49:22.

빛으로 뻗어 올린 가지
저녁놀에 업혀 사라질 허상
성장통 없이 키워낸 가치의 한계

Illusion (Ed. 1/7)
pigment print on paper
700 × 700 mm.
02:05:46.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나선 새벽,
낮에는 단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어느 외진 곳 개성 없던 창문 하나

Sundance
pigment print on paper
1,460 × 1,000 mm.
14:34:00.

일렁이고 울렁이며 움직이는 대상은
끝없는 운동성, 즉 영원성을 함축하고 있다.

Lightfall I
pigment print on paper
280 × 380 mm.
00:42:27.

Lightfall II
pigment print on paper
380 × 300 mm.
13:30:45.

Monument
pigment print on paper
500 × 395 mm.
14:22:32.

외적 유사성과 본질적 불일치
콘크리트로 된 나무는 바다를 만났을까?

Morpheme
pigment print on paper
500 × 360 mm.
17:22:11.

형태소
1. 뜻을 가진 가장 작은 말의 단위.
2. 문법적 또는 관계적인 뜻만을 나타내는 단어나 단어 성분.

Sunset (Ed. 1/7)
pigment print on paper
700 × 900 mm.
19:27:27.

"Were you so sad, then?"

Like a Sunset
pigment print on paper
500 × 395 mm.
21:36:10.

노을을 볼 수 없던 날의 노을

안이 안인가?
(Experiments & Thoughts)
pigment print on paper
272 × 180 mm.
14:52:47.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볼 수 있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시각 예술가에게 어린왕자의 이 두 문장은 얼마나 큰 도전인가?

지금
(Experiments & Thoughts)
pigment print on paper
272 × 180 mm.
17:06:52.

현재에 나를 위치시키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마주하는 결단의 순간
이 관계의 순간에 나의 실존은 증명된다.

Installation Plan III
(Eternal Recurrence)
pigment print on paper
dimensions variable
Jeju, South Korea, 2021.

Eternal Recurrence
For me, the act of pressing a shutter of camera is making a moment of decision on perceiving the world and putting a meaning to it. It is the 'Eternal moment' which does not need any space-time coordinates because it is all encompassing “used to be” and “will be”. Along with explorations in the uncertainty of space-time that varies depending on the recognition and in the eternal moment, I express the imperfection of space-time by entering randomized time information directly in the film using data back of a film camera. Furthermore, I would like to say that we can live our own creative lives only when we keep determined to face ourselves constantly, and then be cured in the present, not an ideal world.

Uncertainty 
video installation, colour, sound (stereo)
01:50 min.
Jeju, South Korea, 2021.

2020년, 건강 문제로 잠깐 귀국하고는 돌아가지 못했다.
이곳과 그곳 어디에도 발을 제대로 딛지 못하고, 두 삶을 동시에 산다.

‘오영종’과 ‘Young-Jong Oh’의 삶이 교차한다.
또 다른 인격의 모국어인 그곳의 언어가 어색해지고
태어나 익힌 이곳에서의 언어는 다시 편안해졌다.
이곳에서의 일상이 익숙해지는 만큼 두고 온 일상이 흐려진다.
낯선 얼굴이 반가워질수록 선명하던 그곳의 얼굴들은 희미해진다.

베를린에서 채집한 다섯 곳의 생활 소음에
제주에서 담은 다섯 곳의 바다 영상을 겹겹이 쌓았다.
오른편 아래 빠르게 변하는 숫자는 독일에서 살아낸 시간을 나타낸다.
끊임없이 울렁이고 일렁이는 끝없는 운동이 함축하는 영원성,
인식과 동시에 지나가고 변하고 마는 시공간의 불확정성
그리고 본다는 것, 감각한다는 것의 불완전성을 보이고 싶었다.

전시 와주신 분들,
못 오셨지만 응원해 주신 분들
그리고 저를 기억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3개월의 전시 기간, 감사합니다란 말을 매일같이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언제든 힘이 필요할 때면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도록 마음 깊이 간직할게요.
감사합니다! 
2022년 3월 14일 새벽에,
50BELL(오영종) 올림.
___
2021 예술공간 이아 기획전시
삶–으로서의–사유
Thoughts We Live By
기간: 2021.12.17. – 2022.03.13.
장소: 예술공간 이아 B1 전시실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중앙로14길 21
주최/주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공간 이아
참여작가:
오영종 (50BELL)
안세현 (Ahn Se hyun)
백수연 (Baek Soo yeoun)
차영민 (Cha Young min)
조기섭 (Cho Ki seob)
이가희 (Lee Ga hee)
도민예술가 180인 (180 Citizen Artists)

기획: 정슬기
운영: 강다은, 이란

평론: 오윤정
디자인: 김민화 (사부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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