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주하는 사진, 확장되는 감각과 신체
오윤정
오영종은 사진 매체가 지닌 일련의 속성을 조건화하고 이를 변주하여 새로운 시각적 실재를 만들어낸다. 색과 물성의 강조, 원근 회피, 시공간 좌표 해체 등의 장치들로 이루어진 그의 사진이 보여주려는 것은 사진이라는 평면에 담긴 시각성에 대한 연구와 실험이다. 그의 사진 속 변주라는 실천을 거친 일상의 모습은 지금, 여기에 맞닿아 있는 동시에 현실에서 한 발짝 멀어진 모습을 보인다. 이를 통해 오영종은 일상을 ‘보는’ 행위와 자신이 속한 세계로서 일상을 ‘인식’하는 행위가 결코 고정된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진으로 제시한다. 사진을 매개로 한 훈육된 감각의 탈피는 자율적인 행위가 되어 자신의 신체를 되찾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Beyond Perspective》 연작은 카메라가 지닌 원근 체계의 조건들이 무화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단안(單眼)의 카메라 렌즈는 전통적인 기하학적 원근법에 기반해 대상을 인식하는 익숙한 거리감과 공간감을 상정한다. 카메라와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적정’ 거리는 오랜 시간 지배적인 시각체계가 작용한 비가시적인 결과물이다. 관찰자는 자신이 위치한 세계 속 시각질서가 설정한 ‘적정’ 틀 안에서 ‘적정한’ 거리를 두고 ‘적정하게’ 대상을 인식해 왔다. 정렬된 현실은 카메라의 한 쪽 눈을 통과하여 각각의 담론에 부합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현실에서 떼어진다. 기계적 시선이 만들어낸 ‘적정성’을 극복하기 위해 오영종이 취하는 방식은 중첩을 통한 거리감의 약화, 착시를 유발하는 새로운 구도의 실험이다.
고정된 단안이 아닌 움직이는 작가의 양안(兩眼)은 현실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거리에 따른 선후 관계없이 동시에 떠오른다는 것을 감각한다. 이 부유하는 시선은 자신의 신체를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대상들이 배열된 위치를 새롭게 가늠하고 섞이거나 겹쳐지게 만들어 즉각적인 현장성을 드러낸다. 새롭게 생성된 ‘나’의 위치에서 오영종은 실재와 환영의 느슨한 연관성을 깨닫는데 이 일련의 경험이 작업 전반을 꿰뚫는다. 그의 사진에서는 서로 다른 부피와 질감을 가진 구조물들이 하나의 평면으로 압착된 것이 눈에 띈다. 작가가 시도하는 압착과 착시의 행위 안에서 대상은 익숙한 공간감과 부피감을 탈피해 평면으로서 새로운 추상성을 부여받는다. 3차원의 구조물에서 텍스처(texture)라는 평면으로 변환된 각각의 단면들은 새로운 감각의 축을 배회하며 색이 가지는 힘을 극대화한다. 적정 거리로 분할된 영역을 벗어나 두텁게 혼합된 색 덩어리는 그 자체의 감각으로 향유되면서 인간이 가진 색채 인지 본능을 자극하고 주관적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텍스처로 전환된 현실을 목도하며 피어오르는 개별의 감각 경험은 사진이라는 평면 위에 겹겹이 쌓이며 실재의 해석을 상상적인 범주로 이끈다. 오영종의 시각적 실험은 관찰자와 대상을 매개하는 빛의 상호작용이 색채를 활성화하고, 이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타자에게 투영된 그림자, 물결 위에서 흩뿌려지는 빛의 조각, 유리창을 여과해 색의 조각으로 파편화된 빛줄기 등 현실에 내려앉은 자연 현상에도 시각적 실험을 적용한다. 기준점을 지니지 않은 채 일렁이고 흘러가는 자연물은 그 순간을 살아내며 충만한 존재성을 가진다. 작가는 즉각적이고 변화무쌍한 자연을 원근법적 체계 안에서 작도(作圖)하는 것이야말로 기계적 시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는 변화하는 존재들을 원근 체계로 견고하게 고정하는 대신 즉각적으로 감지되는 자연 그 자체가 지닌 빛, 온도, 질감을 강조한다. 직관의 시각화는 고정된 카메라의 렌즈를 넘어서 오영종만의 카메라 아이(camera-eye)로 변환되어 존재와 인식의 끝없는 운동성을 함축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Eternal Recurrence》 연작의 시작점이 되는 <아파!>는 오영종이 구사하는 수직/수평의 화면 구성을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상단에서 하단으로 급격히 치우치며 수직의 축이 무너진 장면은 작가가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에 급박하게 촬영된 사진임을 암시한다.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우연적 상황을 필사적으로 잡아낸 것이다. 보편적인 언어체계에서 자연스레 인지되는 ‘아파트’라는 3음절의 기표는 작가의 본능적인 결단을 통해 ‘아파!’라는 2음절 및 문장부호로 절단된다. 이는 지난하고도 끈적했던 의미체계 속에 갇힌 개인이 아닌, 억눌렸던 순수한 동기를 회복한 현재의 시각화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최근 오영종이 선보이는 《Eternal Recurrence》 연작은 사진의 기초 질서인 지표성을 약화하는 방식을 통해 현재성을 강화한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약속인 수많은 기준 위에 선 개인은 사회를 구성하는 성원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사회적 책무를 끊임없이 짊어진다. 거대한 잣대들 앞에서 나로서 충만한 현재는 연달아 밀려나며 지금을 감각하는 경험 또한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라고 여겨질 어떠한 외적 사건이 아닌 대상을 인식할 때의 ‘순간적 동기’와 셔터를 누르는 ‘실존적 결단’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순간 섬광처럼 피어난 이미지를 붙잡아낸다.¹ 그의 프레이밍(framing)은 이미지를 구획한 사각형의 내부에서 종료되는 것이 아닌 작품의 캡션(caption)이라는 프레임 밖의 영역까지 확장된 모습을 보인다. 《Beyond Perspective》 연작에서는 캡션에 촬영 장소가 병기되어 있는 반면, 《Eternal Recurrence》 연작은 사진의 지시대상과 관련된 정보를 제시하지 않는다. 캡션이라는 텍스트의 나열은 작업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며 관람자의 인식 영역을 자극해 특정한 해석의 방향으로 유도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오영종은 자신의 언어적 민감도를 기반으로 사진 속 대상과 결을 함께하면서도 모호한 캡션을 의도적으로 전달한다. 이는 이미지라는 시각적 기호를 인식할 때 작품과 캡션을 가로지르는 상황에서 발현되는 양자간의 상대적 비교를 의도적으로 늦춰 현재의 이미지 자체를 집중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현재형의 문장으로 쓰여진 오영종의 사진은 과거 혹은 미래의 언젠가로 남용되지 않는다. 다만 즉각적 인지라는 체험을 사진으로 발화해 경험 가능한 상태로 공유하고 확장되는 현재를 기억하는 방식이 될 뿐이다.
사진은 장치에 의존하는 숙명을 지닌 기계적인 실체다. 특정 매체를 경유하여 이미지가 발생 되는 만큼 장치를 작동시키는 메커니즘에 관한 이해가 작업에 필수 요소로 작용한다. 장치라는 자동화된 프로그램 앞에서 인간은 제한된 범주 내에서만 움직이기 쉬우며 장치에 매몰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진다. 여기에서 작가라는 위치는 매체의 제약을 감지하여 위험을 우회하는 차별적 예술실천을 수행하게 된다. 오랜 시간 사진의 의미화를 이끈 조건들을 외면한다는 것은 매체가 작동되는 그 시공간의 주체가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영종은 상실은 창조의 시작이 되며, 창조의 지속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상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상실과 창조는 독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동력이고 끝없이 되풀이되는 것이다.² 그렇기에 오영종은 역으로 장치에 질문을 던지고 대응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는 사진이라는 기계적 결과물이 함축한 내부 규칙에 자신의 신체라는 외부적 요소를 주입해 장치의 또 다른 가능성을 살피고 확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은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눈을 가진 신체’라는 사실을 되찾아낸다. 집요한 직관의 눈으로 감각한 지금 이 순간 속 존재와 존재의 연결, 장면과 장면의 마주함은 우리 안에서 지속적으로 환기되며 시각적 사고를 추동할 힘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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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오영종, 《Eternal Recurrence》 작가 노트.
² 오영종 인터뷰, 예술공간 이아, 2021년 11월 6일.
오윤정, 《변주하는 사진, 확장되는 감각과 신체》, 2021.